• Creative Lab
  • 한 줄의 문장이 나를 안아준 날

  • 공동관심:자화상
    + 공공예술캠페인
  • 말보다 느렸기에, 더 깊이 닿았던 이야기
    그날, 우리는 ‘나’를 문장으로 적고, 말하고, 안았습니다.
    마음을 쓰는 시간
    <공동관심 자화상> 문장 편은 말보다 느린 방식으로 마음을 건넵니다.
    글을 쓴다는 건 질문 앞에 머뭇거리고, 감정을 붙잡으려 애쓰고, 말을 떠올렸다 지우고, 다시 다른 말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문장이라는 그릇 안에 망설임과 선택, 고요한 고백이 담기면서, ‘나’를 표현하는 글이 완성됩니다.

    질문 카드를 고르고, 연필을 쥐고, 글을 쓰고, 다듬고, 소리 내어 읽는 그 모든 과정이 하나의 자화상이 되었습니다.

    이번 문장 편에는 15명이 참여했습니다.
    준비된 40개의 질문 중, 한 장은 무작위로, 또 한 장은 스스로 고른 질문으로 두 장의 카드를 받았고, 그중 하나의 질문에 대해 30분 동안 글을 썼습니다. 누군가는 두 질문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조용히 하나에 집중했습니다.


    30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머리를 긁적이며 첫 문장을 쓰고, 뭔가 어색해서 지우고, 다시 쓰고.
    옆에서 누군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연필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깁니다. 그렇게 제각각 다른 속도로, 하지만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냈습니다.
    글만이 할 수 있는 일
    글쓰기는 다른 예술과 무엇이 다를까요?
    글은 순서가 있는 언어입니다.
    첫 번째 단어 다음에 두 번째 단어가, 첫 문장 다음에 다음 문장이 와야 하죠.
    그림처럼 한눈에 보여줄 수 없고, 음악처럼 동시에 여러 소리를 낼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한 글자씩, 한 단어씩, 한 문장씩 차례로만 만들어갈 수 있죠.

    그래서 글은 마음을 정리하게 만듭니다.
    엉켜 있던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흐릿했던 기억에 질서를 부여하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뭘까?”
    “이 감정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하지?”
    “이 다음 문장은 어떻게 이어질까?”

    그 질문과 마주하는 시간 자체가,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마치고 나면, 조용히 이렇게 속삭이게 되죠.
    “아, 내가 이런 마음이었구나.”

    목소리가 된 자화상
    완성된 글들은 낭독을 통해 목소리가 됩니다.
    종이 위의 문장이 입술을 통해 소리가 되는 순간, 개인의 이야기는 공동의 경험이 됩니다.

    처음이라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읽어 내려가는 사람,
    이런 자리가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말하는 사람, 눈물이 나서 중간중간 멈춰야 하는 사람.

    낭독은 단순히 글을 읽어주는 일이 아닙니다. 내 안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가장 용기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용기는 전해져, 서로의 마음에 깊이 닿게 됩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 하나로 만나는 마음
    참여자들은 각기 다른 질문을 택했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썼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공통된 흐름이 있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여정.
    양O화 — "나는 지금도 수도꼭지다"
    감정을 억누르던 나에서 감정을 인정하는 나로
    "울음 멈추는 법"을 검색하며 눈물을 참아온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감정이 풍부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던 때도 있었죠. 하지만, 글을 쓰며 깨달았습니다.
    "나는 지금도 수도꼭지다. 너의 세계는 절대로 그대로 멈추지 않아."
    흘러나오는 감정을 더는 숨기지 않고, 그마저 나다운 모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김O원 — "그림으로는 잘하고만 싶을 것 같았어요"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솔직해도 된다는 자유로
    그림을 업으로 하는 그녀가 그림 대신 글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익숙한 영역에서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었죠.
    "글을 쓰면서 알게 됐어요. 나는 참 말이 많고, 생각보다도 솔직하다는 걸요."
    서툴기에, 더 진실했던 순간. 글은 완벽함 대신 진실한 자신과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정O혜 — "내가 준 사랑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타인의 사랑을 구하던 나에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나로
    칭찬받고 싶어 먼저 칭찬하고, 사랑받고 싶어 먼저 사랑했던 시간들.
    하지만 그 사랑은 돌아오지 않았고, 마음은 점점 지쳐갔습니다.
    병을 앓고 회복하는 동안 그녀는 스스로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법을 배웁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제일 빠르겠구나. 그게 진짜였구나.”
    진짜 사랑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김O영 — "두려움은, 너에게 사랑의 동의어"
    서툰 자신을 자책하던 나에서 , 서툰 자신도 사랑하는 나로
    "욕심 없는 사람"이라 스스로를 정의하던 그녀에게도 예외가 있었습니다.
    사랑 앞에서만은 욕심이 생기고, 서툴러지고, 방황하게 되었죠.
    그런 자신을 자책하는 대신, 다정한 편지를 쓰듯 스스로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너는 사랑하는 것을 마주할 때 가장 서툴러지는 것 같아. 두려움이란, 너에겐 사랑의 동의어인 것 같아. 그래도 나는, 네가 사랑에 뛰어드는 모습을 참 좋아해."

    글을 쓰며 계속 지우고 고쳤다고 했습니다.
    "좋은 말을 해주고 싶어서요. 저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불완전한 자신도 사랑할 수 있다는, 온화한 자기 수용의 언어였습니다.

    서로 다른 상황, 서로 다른 고민과 이야기.
    그러나 모두, 글을 쓰며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감정이 풍부한 나, 완벽하지 않은 나, 사랑을 기다리기보다 먼저 안아주어야 할 나, 사랑 앞에서 서툰 나.
    모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느린 언어가 건네는 안아줌
    참여자들의 반응은 이 경험이 어떤 시간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알게 되었어요."
    "내가 나를 안아주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 이야기에 울컥했어요."
    글쓰기는 단지 기록이 아닙니다.
    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며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첫 문장을 쓸 땐 몰랐던 마음을, 마지막 문장에서 비로소 만나게 되기도 하죠.
    그리고 그 진심이 목소리가 되어 공유될 때, 개인의 고백은 공동의 위로가 됩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나도 괜찮은 사람이구나.”
    그 안도감이 우리를 어루만집니다.

    그날, 15명은 각자 다른 이야기를 썼지만 결국 같은 곳에 도착했습니다.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하게 된 자리.

    글이라는 방식은 느렸습니다. 30분 동안 겨우 몇 줄, 많아야 한 페이지를 썼을 뿐이죠. 하지만 그 느림이 만들어낸 깊이는 어떤 빠른 방법보다도 진실했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쌓아 올린 그 말들이 결국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괜찮아, 너는 지금 이대로 충분히 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 안아줌이 조용히 전해지길 바랍니다.

    글: 조아라
    사진: 프로보노 김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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