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reative Lab
  • 연필 끝에서 건네진 따뜻함을 전합니다

  • 공동관심:자화상
    + 공공예술캠페인
  • 선선한 9월, 문장으로 서로를 만나다
    공동관심 자화상’은 길스토리가 시민들과 함께 ‘나’를 예술로 표현하는 공공예술 캠페인입니다.
    그림, 사진, 도예, 글 등 다양한 창작을 통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마음의 온기를 나누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9월의 어느 금요일, 길스토리의 공공예술 캠페인 <공동관심 자화상 – 문장 편>이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에서 열렸습니다. 그날, 총 12명의 시민이 한 공간에 모여 ‘질문’과 ‘문장’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꺼내는 시간을 가졌죠. 핸드폰 속 스크롤 대신 연필을, 빠른 대화 대신 느린 글쓰기를 택한 우리는 따뜻한 문장으로 서로를 알아갔습니다.
    마음을 쓰는 시간
    문장 편의 첫 시작은 질문 카드를 선택합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40장의 카드 중 한 장은 무작위로, 또 한 장은 스스로 골라 손에 쥡니다. “최근 인상 깊었던 산책 장면은?”, “내가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인가요?” 짧은 문장 속 질문 하나가, 각자의 기억을 열어 주었습니다.
    참여자들은 두 장의 카드 중 하나를 택해 30분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며, 조용히 연필을 움직이는 손끝에서 진지함과 저마다의 이야기가 피어오르죠.

    질문으로 만난 세 사람의 이야기
    질문 1. 최근 인상 깊었던 산책 장면에 대해 써보세요
    서울살이를 마무리하고, 나는 작은 도시로 내려왔다.
    누군가는 후회할 거라 했지만, 이 길 위에서 나는 후회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침마다 모르는 아이들의 인사를 받는다. 그들의 웃음은 낯설면서도 따뜻하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풀과 나무의 향기가 감돌고, 벌과 새소리, 흙냄새가 스며든다. 출장 길에 스치는 초록의 기운조차 나를 설레게 한다.
    서울에도 분명 이런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야 해맑은 인사와 자연의 풍경들이 보이고, 나의 빈 공간이 따뜻하게 채워진다. 삭막하던 일상은 푸르름으로 덮이고, 나는 다시 살아 있는 것들과 함께 걷고 있다.

    질문 2. 기억 속 가장 첫 번째 추억은 무엇인가요?
    "내가 똥이랑 오줌 다 치울 거야!"
    어린이날 선물로 첫 반려견을 기다리며 했던 약속이다. 그날, 강아지를 만나러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가는 길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문 앞에 튀어나온 블록,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의 나무 색까지 또렷이 남아 있는 건 들뜬 이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날 반가웠던 건 나뿐이었다. 새 가족이 될 '짱아'는 낮은 테이블 밑에 몸을 숨기고, 귀 끝만 살짝 내민 채 나를 경계했다. 옆에는 더 활발한 동생 '해피'가 있었지만, 집 안을 휘젓는 나의 모습이 썩 반갑지 않았던 것 같다.
    순간 서운함과 실망감이 찾아왔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양팔에 짱아와 해피가 나란히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그 장면 하나로 모든 서운함은 사라졌다.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마음이 열리는 그 작은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질문 3.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인가요
    내가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은 '운전면허를 딴 것'이다.
    누군가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건 나에게 늘 큰 두려움이었고, 그래서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으로 운전해 간 곳은 할머니 댁이었다.
    시골 집 앞마당에 차가 들어서자, 밭 일을 하시던 할머니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와 "누구냐?" 하고 묻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순간, 운전을 배우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할머니를 더 자주 뵐 수 있었고, 함께 여행도 다니고, 할머니가 기꺼이 내어 주시는 쌀과 고춧가루, 양파와 감자들을 차에 가득 싣고 올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모든 순간마다 행복해 하시던 할머니의 표정은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시작 앞에서 늘 이 기억을 떠올린다. 운전면허는 단순히 이동 수단이 아니라, 용기가 두려움을 이긴 순간이었고, 사랑이 나를 움직이게 만든 첫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할머니와의 이 길 위의 행복을 기억하며 다시 용기를 내고 싶다.

    느린 언어가 남긴 여운
    세 개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질문에서 시작되었지만, 모두 따뜻함을 품고 있었습니다. 서울을 떠나 찾은 작은 도시의 푸르름, 반려견과 함께한 첫 만남의 설렘, 그리고 용기로 만들어낸 할머니와의 소중한 추억들. 두려움과 기대가 교차하는 순간마다 관계는 용기를 만들었고, 사랑은 삶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글쓰기가 끝나고 연필을 내려놓자,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편안한 표정과 따스한 미소를 발견했습니다. 각자의 이야기는 달랐지만, 그 안에 담긴 온기는 같았죠. 종이 위에 새겨진 진솔한 마음은 서로를 이어주었고, 어색했던 공간은 편안해지고, 따뜻해져 있었습니다.

    예술로 이어지는 마음의 여정
    이번 ‘문장 편’은 우리의 일상 속에 숨어 있던 따뜻한 순간들이 어떻게 마음에 남아, 삶의 방식이 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공동관심 자화상>은 그런 마음의 여정을 예술로 이어가는 캠페인입니다. 그림, 도예, 글 등 다양한 창작을 통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타인의 감정에 귀 기울이며 ‘함께의 온기’를 만들어 갑니다. 문장 편에서의 이 하루는 그 여정의 한 장면이자, 예술이 우리를 다시 연결해 주는 순간이었습니다.
    10월의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지금, 오늘 나눈 이 따스함도 당신의 하루에 오래 머물기를 바랍니다.
    글: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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