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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나길 2기 ‘여기 있어요’
"불안과 흔들림 속에서도 ‘나’를 남기려는 창작가, 서화랑을 만납니다.”
염주가 말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염주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기도의 도구로 떠올리곤 하지만, 서화랑 작가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매일 아침 그의 손목에 걸려 하루를 함께하는 동반자이자, 불안한 순간마다 손끝에서 굴러가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고 있죠.
![]() 그와 저는 꽤 오랜 시간을 함께해왔습니다. 큰 변화를 맞이하던 시기에도 말이죠. 2021년 혈액암 진단을 받은 그는 더 이상 조소 작업에 쓰던 석고 같은 재료들을 다룰 수 없게 되었어요. 그 어려운 시간을 버티고 견뎌내는 동안에도 제가 곁에 있었어요.
그는 저를 꽉 쥐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어린 시절 즐겼던 게임과 디지털 작업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렇게 발견한 것이 바로 '픽셀'이었죠. 서화랑은 누구일까요?
![]() 픽셀이라는 자화상
"멀리서 보면 귀엽고 친근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불안정하고 흔들려 보이잖아요."
화랑 작가가 어린 시절 마인크래프트에서 처음 만난 픽셀을 설명한 말입니다. 그때는 단순한 게임 속 블록일 뿐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고 해요. ![]() 병으로 인해 기존의 재료를 포기해야 했을 때, 그는 대신 포맥스라는 비주류 재료를 택해 픽셀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전작 <메디키트>는 치유에 대한 간절함을 담았고, <불씨>는 현실과 부딪히며 수용하고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 작품 속 작은 픽셀들은 가까이에서 보면 흩어진 조각이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그림을 완성이 되죠. 그는 이렇게 시야에 따라 달라지는 픽셀의 특성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어요. 그 작은 조각들은 그의 삶을 다시 써내려가는 언어가 되었고, 불안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창이 된 것이죠.
노이즈라는 신호
화랑 작가의 이번 함께나길 전시에서 제목은 <노이즈>입니다. 자립준비청년으로 살아가며 병과 제약 속에서 느낀 자신의 정체성은 언제나 분명히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픽셀처럼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신호 같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 상태. 그는 그것을 "노이즈 같다"고 말합니다.
![]() 이번 전시는 그가 겪어온 불안과 모호함의 기록이자,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이들을 향한 작은 수신호입니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신호 같은 거예요." 픽셀처럼 멀리서는 형태가 잡히지만 가까이서는 흔들리고, 신호 같지만 읽히지 않는 것. 그는 그것이 곧 지금의 자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본 서화랑 작가는요
저는 오랫동안 그의 곁에서 그가 흔들릴 때마다 안정감이 되어왔습니다. 그래서 알아요. 그의 픽셀 조각들에는 불안을 견뎌낸 시간들이, 흔들림을 이겨낸 용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 그의 작업을 보면 유머와 사유가 공존해요. 멀리서 보면 게임 속에서 나온 듯 귀여운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작은 조각들이 모여 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 오늘도 그는 저를 손목에 차고 작업실로 향합니다. 새로운 픽셀을 만들며, 또 다른 존재의 증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픽셀들이 관객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각자 자신만의 '여기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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