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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나길 2기 '여기 있어요' | 인센스가 피워내는 '효서'라는 창작가
"오늘은 제가 가장 깊이 스며든 사람을 소개합니다."
저는 인센스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형태는 없지만, 머무는 방식이 있습니다. 피어올랐다가 사라져도, 공기 속 어딘가에 남아 누군가의 기억에 오래 자리하죠. 다시 저를 만났을 때 그날의 온도와 공기가 되살아나는 것, 그것이 제가 가진 힘이라고 그녀는 말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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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효서. 그녀의 집 안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있지만, 제 자리는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 시작은 오래전 우즈베키스탄 해외 봉사 여행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맡았던 팔각의 냄새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 다시 인센스를 피우는 순간에 되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때의 공기, 그날의 감정, 낯선 냄새과 소리까지. 작은 향 하나가 그 모든 기억을 불러냈던 거죠.
그녀에게 향은 기억을 잇는 하나의 실이 됐습니다. 그 향은 이제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던 결핍을 깨우는 매개체로 사용이 되죠.
효서는 누구인가요?
불타는 기억, 붉은 여자아이
효서의 그림 속엔 늘 한 아이가 등장합니다. 붉은 머리의 여자아이. 무표정하고, 홀로 서 있고,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아이죠.
그 시작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집안은 갑작스럽게 어려워졌습니다. 할머니는 울면서 짐을 불태웠고, 그 불 속엔 어린 효서가 가장 아끼던 몸보다 큰 햄스터 인형도 함께 타올랐습니다. “가져갈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사라진 인형. 그 불빛은 어린 효서에게 너무 커다란 상실과 상처로 남았죠. ![]()
불에 대한 기억은 그녀의 캔버스 위에서 붉은 머리의 여자아이로 피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실은 그녀 안에 작은 빈자리를 남겼고, 그 결핍은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죠. 이 아이는 과거의 효서이자, 저마다의 결핍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결핍을 피우다
효서는 말합니다. “감정적 결핍은 감당하기 어려울 때 무의식 속으로 밀려나요. 저는 그 결핍을 그림으로 꺼내고 싶어요.” 그래서 그녀는 저를 택했습니다. 향과 그림이 만나면, 사람들의 무의식 속 결핍을 부드럽게 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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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피우다(Blooming Project)’ 그녀의 이번 프로젝트 이름입니다. ‘피우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향을 피우듯 결핍을 드러내는 것, 또 하나는 꽃처럼 피어나듯 결핍을 승화시키는 것.
그녀의 그림은 몽환적입니다. 현실과 꿈의 경계, 고요하지만 선명한 감정들. 그리고 그 옆에는 제가 피어오르죠. 효서의 작품과 함께 저의 향이 스며들 때, 관객은 자신 안의 결핍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다시 무의식의 저편으로 내려앉아, 그녀의 작품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물게 합니다.
무의식을 건드리는 작가
그녀는 디자인과 회화, 두 전공을 모두 공부했습니다. 디자인은 명확히 보이게 하는 일이고, 회화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고 말하죠. 처음의 효서는 디자인처럼 예쁘고 완벽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결핍의 진짜 얼굴은 그 안에 없었어요.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결핍은 아름답지 않았고, 보여지는 것보다 진심과 감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을요. 그래서 덮고, 다시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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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인정하는 순간, 세상과 자신을 더 이해할 수 있다고,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에선 무의식을 건드리는 게 자신의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곤 덧붙입니다. 자신의 그림이 누군가의 기억 속 고통을 조금이라도 흡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결핍을 피워내는 사람
어느 순간, 효서는 알았습니다. 결핍은 개인의 상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그림자라는 것을. SNS 속 갈등과 상처, 우울한 마음들. 보이지 않는 그 모든 것이 ‘결핍’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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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결핍을 부정적으로 그리던 효서가 이제는 그것을 피워내며 세상을 이해하려 합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상처를 덮는 일이 아니라, 그 너머를 바라보는 일이 되었으니까요.
저는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제가 머문 자리는 오래도록 향기와 기억을 남깁니다. 효서의 작품도 그렇습니다. 조용하지만 깊이 스며들어, 당신의 무의식 속에도 작은 향기처럼 남겠죠. 당신도 결핍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마침내 피워낼 수 있길 바랍니다.
글: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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