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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와 문화, 미래의 가치를 품고 있는 서울 한양도성에서
      우리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그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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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5_백악 구간
    한양도성 오디오 가이드 5_백악 구간

    < 자연을 품은 성곽 도시, 한양도성 >
    * 코스 : 윤동주 문학관 – 창의문 – 북악산 구간 – 숙정문 – 와룡공원 - 혜화문


    한양도성 순성길 백악 구간은 마을과 산과 숲을 가로지르는 길입니다. 성벽 길은 안과 밖, 중심과 외곽을 바라보게 하고 어제와 오늘의 삶을 생각하게 합니다. 돌 하나가 어딘가에 그냥 놓여있다면 그것은 돌일 뿐입니다. 하지만 돌과 돌이 만나 쌓여간다면 그것은 단순한 돌이 아닌 튼튼한 성벽이 되고 역사가 됩니다. 성질은 변하지 않지만 이름이 바뀌고 역할이 달라집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이룬, 우리가 간직해야 할 문화유산입니다.

    한양도성 순성길에는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 숙정문, 이렇게 사대문과 광희문, 소의문, 창의문, 혜화문 이렇게 사소문이 있습니다. 지하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시작해서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끝나는 이번 길은 숙정문과 창의문 혜화문을 볼 수 있는 구간입니다. 이제 마지막 순성길을 안내하겠습니다.

    지하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버스를 타고 윤동주 문학관에서 내립니다. 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이 있습니다. 이분은 1968년 북한 무장 공비 서른한 명이 청와대를 기습 공격했을 때 격렬한 총격전으로 순국했습니다. 백악 구간은 두 나라로 갈라진 민족의 아픈 상처가 담긴 곳이기도 합니다. 창의문 방향 표지판 근처에는 청계천 발원지라는 비석도 세워져있습니다.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악산 사이에 있는 문으로 사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 지어진 문루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창의문 문루에 서서 한양도성의 옛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백악 구간은 군사보호구역이어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증을 받아야 합니다. 개방시간도 정해져있어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11월에서 2월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입니다.

    북악산 출입증을 목에 걸고 길을 걷겠습니다. 두 사람이 손잡고 걸을 수 있을 정도의 폭으로 길게 뻗은 길은 돌계단과 나무계단이 놓여있습니다. 올라가느라 숨이 차오를 때쯤 돌고래 쉼터와 만납니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가 길을 나섭니다. 낮게 깔린 성벽 위로 풍경을 바라보다가 성벽에 뚫린 작은 구멍 안으로 바라보면 풍경이 조금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자연이 만든 창으로 세상을 보는 느낌입니다. 조금 힘겨울 때쯤 백악 쉼터와 만납니다. 멀리 보이는 인왕산 성곽길과 부암동 주택가를 바라보며 쉼을 누리다가 다시 길을 걷습니다. 북악산 정상인 백악마루에 도착하면 북악산의 옛 이름인 백악산 342m라고 쓰인 표지석이 있습니다. 자연이 빚어낸 우뚝 솟은 남정 바위도 볼 수 있습니다.

    백악마루를 지나면 특이한 소나무를 하나 만나게 됩니다. 몸통에 빨간 표식이 찍힌 1•21사태 소나무입니다. 빨간 표식은 1968년 청와대를 습격했던 무장공비들과의 총격전에서 소나무가 맞은 열다섯 발 총탄 자국입니다. 치열했던 총격전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제 청운대까지 힘내서 걸어가 봅니다. 청운대 주변에서 꼭 살펴보아야 할 것은 성벽 돌에 새겨진 이름입니다. 성벽을 축조할 때 공사 책임자의 직책과 이름이 돌에 새겨져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을 다해 성벽을 축조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돌에 새겨진 이름을 보면서 우리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오늘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청운대를 지나면 이제부턴 성의 외벽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성 밖으로 빠져나와 나무계단으로 내려갑니다. 성의 외벽을 따라 걷다 보면 암문이 나옵니다. 암문으로 들어가서 백악 곡성 표지판을 따라 걷다 보면 백악 촛대바위와 만납니다. 그리고 한양도성 북쪽 대문인 숙정문에 다다릅니다. 현존하는 도성의 문 가운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건 숙정문이 유일합니다. 숙정문은 2층 누각이 먼저 보이는데 추녀마루 위에 여러 모양의 형상이 늘어서 있는 모습은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숙정문의 누각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드넓은 하늘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숙정문을 나오면 와룡공원 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이 길은 걷는 내내 솔잎 향이 심신을 풀어줍니다. 둘러보면 온통 소나무로 무성합니다. 소나무는 땅이 척박하더라도 잘 자랍니다. 하지만 자라는 속도가 늦어 다른 나무들과 경쟁력이 약합니다. 그래서 떼 지어 모여 살기를 좋아합니다. 이곳은 소나무의 성질에 맞게 주변에 소나무를 많이 심어 보호하고 있습니다. 소나무와 성벽이 주는 ‘함께’라는 의미를 곱씹어 보면서 이 길을 빠져나옵니다.

    와룡공원 방향으로 걷다 보면 말바위가 나옵니다. 이곳 전망대는 서울시가 선정한 우수 조망 명소니까 잠시 머물면서 주변 풍경을 둘러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말바위 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반납하고 와룡공원으로 계속 향합니다. 이 길은 산길입니다. 성벽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야 하니 표지판을 계속 확인하면서 걸어야 합니다. 길 초입에서 ‘취병’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식물을 소재로 만든 친환경 울타리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사라진 이 아름다운 울타리는 창덕궁 후원에 복원되어있습니다. 길을 잃을지도 모르는 산길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금세 길동무가 될 수 있습니다. 길을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맙게 느껴지니까요.

    숲길을 빠져나오면 다시 성벽을 만납니다. 이때 암문으로 나가지 말고 ‘한양도성 혜화문, 낙산’ 표지판 방향으로 성의 외벽을 따라 걷습니다. 이 길은 성벽과 민가가 아주 가깝습니다. 성벽 옆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곳은 북정마을입니다. 북정마을이 있는 성북동에는 만해 한용운 심우장과 상허 이태준 가옥, 성북동 최순우 가옥이 남아있습니다. 이런 옛집이 더 많이 남아있었다면 오래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우리 곁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훼손된 만큼 사라진 옛이야기가 아쉽게 다가옵니다.

    성벽을 따라 걷다가 찻길이 나오면 서울과학 고등학교 후문 맞은편 방향으로 길을 건너 혜화문 표지판을 보고 골목길로 들어섭니다. 이 길의 성벽은 옛 방식으로 세운 돌 위에 학교 담장이 시멘트로 세워져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구간은 성벽이 그대로 보존되어있어 과거 유물과 현대 건물이 공존하는 골목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길을 계속 걸어 한양도성 북동쪽 문인 혜화문에 도달하면 한양도성을 다 걸어본 셈이 됩니다. 혜화문을 둘러보고 지하철 한성대입구역 방향으로 걸어가면 바로 5번 출구에 도착합니다.

    시간의 희생이 있어야 만나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땀과 희생이 담긴 성벽을 따라 걷지 않았다면 한양도성 순성길의 역사와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오늘의 길이 과거의 길과 이어졌다는 걸 더 깊게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존재도 의미 없이 그냥 던져진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될 테고요. 소중한 문화유산에 담긴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 내 삶의 이야기를 새롭게 꿈꾸고 일구어가면 어떨까요. 오늘도 내일도 걸어가야 할 여러분의 길이 순성 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함께 한양도성의 길을 걸어주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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